유월절 식사는 일주일 동안의 긴 “무교절”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일주일 동안 무교병(누룩이 들어가지 않아서 부풀지 않은 납딱한 밀가루 빵 마짜)을 먹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여러 장의 무교병을 그들의 방식으로 오독오독 깨물어 먹으며, 한동안 문이 닫힌 베이커리 코너을 그리워하며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분명한 대답은 빵 반죽이 부풀어 오르도록 기다릴 시간이 없었던, 급하게 이집트를 탈출했던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설명에는 작은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시기 적절한 지시
먼저 하나님은 출애굽기 12장 1-5절에서 모세에게 유월절 계획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 날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그 양을 잡고.”
그런데, 희생 제물인 유월절 어린양을 도살하는 이 황혼의 의식은 오늘날까지도 그라짐 산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습니다. 요점으로 돌아가서 – 하나님께서 "이 달"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마도 그 달 초에 이 지시를 하셨을 것이고, 그것은 적어도 그 달 10일 이전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날은 모든 사람이 어린 양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14일에 어린 양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9일에 모세에게 이 모든 것을 말씀하셨다 해도 유월절이 아직 5일이나 남았는데… 왜 빵 반죽을 부풀릴 시간이 없었을까요? 3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남으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그러나 그들이 조금 서두를 줄 알았다면 빵 만드는 과정을 확실히 더 일찍 시작할 수 있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그것은 상징적인 서두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애굽을 급히 떠났음을 실감나게 상기시켜 줍니다. 그것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방식으로 고대 이야기를 오늘날 우리 가정에서 되살리는데 도움이 되는 강력한 상징입니다.
그러나 이 무교병 이야기의 논제는 서두름만이 아닙니다. 모든 누룩을 제거하라는 명령은 사실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첫째 달 그 달 열 나흗 날 저녁부터 스무 하루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무교병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지리니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 지니라.” (18-20)
누룩이 무슨 문제라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무엇을 의도하시는지, 그리고 누룩을 제거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많은 상황에서 그러하듯이,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한 의미를 조명해줍니다. 고린도전서 5:6-8은 누룩과 죄, 특히 교만의 죄를 병렬시킵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묵은 누룩을 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부풀어 오르는 것”으로 교만해진다는 개념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 4장 18절, 8장 1일, 로마서 11장 11-32절 등 다른 곳에서도 언급합니다. 그 상징은 분명합니다. 누룩을 넣어 부풀린 빵은 죄가 되는 교만을 연상시키며,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은 겸손하고 단순하며 순수합니다. 공기 중에 노출만 시켜도 반죽에 영향을 줄 만큼의 누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무교병이 부풀어 오르지 않도록 특별히 노력해야 합니다. 무교병 전체에는 점선이 있고 구멍이 뚫려 있어 빵을 부풀지 않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겸손하고 순결하고 죄가 없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유월절 희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실 때 어떻게 째찍질 당하시며, 찔림을 당하셨는지를 상기시킵니다.
유월절 식사의 무교병과 관련된 또 다른 흥미로운 측면은 로마 시대, 대략 예수님 시대 즈음에 발전된 “아피코만” 전통입니다.
아피코만은 그리스어로 "달콤한" 또는 "다음에 오는 것"을 의미하며 오늘날의 유월절 만찬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이 로마 관습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 전통은 세 개의 무교병을 덮어서 보관하다가 중간의 무교병을 두 조각으로 나누고 그 한 조각을 숨기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숨겨진 조각을 찾아내도록 격려받고, 발견된 그 조각은 달콤한 간식으로 교환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성부, 성자, 성령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아들”이 꺼내지고 부서지고 잠시 숨겨지면서 구속을 가져옴으로써 우리는 가장 달콤한 보상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많은 채찍질과 찌름도 예수님을 아래에 붙잡아 둘 수는 없었습니다. 전혀 교만하지 않으셨던 그 분은 이제 다시 살아나셔서 영광 중에 아버지 우편에 들리우시고, 당신과 나를 노예 생활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치르신 놀라운 희생으로 인해 다른 어떤 이름보다 높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납딱한 무교병과는 다른 부분이었습니다.
기념의 떡(빵)
유월절 만찬에는 함께 무교병을 먹는 의식이 있고 그 때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먹었던 고난의 떡”이라고 말하며 서로를 상기시켜 줍니다. 그것은 고난과 노예생활과 가난을 상징합니다. 그 부분은 전체 유월절 식사 순서와 함께 이스라엘 후손들이 해마다 유월절 행사를 재현하면서, 각 세대가 그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노예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일을 기억하는 방식이었습니다.시간이 지나 예수님께서는 이 동일한 유월절 무교병을 들고 제자들에게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먹었던 고난의 떡”이 아니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유월절의 어린 양을 잡던 시간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구속의 이야기 전체는 기적적인 출애굽을 지휘한 바로 그 작곡가가 계획한 더 큰 구속의 장대한 메아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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