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민 22:31-33).
발람과 말하는 나귀의 이야기가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그것은 이어지는 장들에서 발람의 세 가지 "예언"의 의미를 실제로 풀어내는 해석적 열쇠가 됩니다(민 23:7, 18; 24:3). 발람과 그의 나귀의 이야기에서 발람은 영적인 현실에 완전히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그의 나귀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사자를 피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려는 발람의 세 번째 시도에서 하나님은 나귀의 입과 발람의 눈을 열어 칼을 빼고 서서 백성을 지키고 구원할 준비가 된 이스라엘의 강력한 전사를 보게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다음 두 장에서 발람과 발락의 이야기와 어떻게 전략적으로 병행을 이루는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영적으로 눈이 멀었던 왕 발락은 발람(그의 유명한 당나귀)이 이스라엘을 세 번 저주하도록 강요하려 합니다. 발락이 발람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는 세 번째 시도에서(민 24:10), 하나님의 영은 발람의 입을 채우고(민 24:2) 그의 눈을 열어(민24:3-4)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민24:14)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고 구원할 메시아 전사를 보게 하셨습니다(민 24:7-9, 17-19).
따라서 발람과 그의 나귀에 대한 이 이야기는 적어도 두 가지 전략적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그것은 우리가 발람을 진정한 선지자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발람의 예언적 말씀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두 번째 이야기의 발람과 첫 번째 이야기의 발람의 나귀를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발람의 입에 말씀을 넣어 주실 때 "말하는 나귀"(발람)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민 22:38; 23:12, 16). 둘째, 이러한 유사점은 우리가 발람의 세 번째 예언의 중요성을 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발람이 주님의 천사를 피하려는 "세 번째 시도"는 너무나 중요해서 저자는 발람이 "세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고 말합니다(민 22:28, 32-33). 저자는 이러한 유사점을 사용하여 발람의 세 번째 예언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이 세 번째 예언이 처음 두 예언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절대 실망하지 않습니다. 눈을 뜨고 우리는 발람과 발락과 함께 이스라엘의 왕-메시아가 오는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민 24:7-9, 14, 17-19).
세상의 나라들이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저주하려 하지만, 우리는 두려움에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백성은 저주받을 수 없습니다(민 23:8, 19-20). 우리는 눈을 뜨고 자신있게 미래를 바라보며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땅과 백성을 지키러 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여 만들어진 어떤 무기도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지를 당신에게 말하리이다 하고...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그의 원수 에돔은 그들의 유산이 되며 그의 원수 세일도 그들의 유산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민 24:1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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