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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원포이스라엘

시행되지 못한 음모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하들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알렸더니 그들이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전하였더라"(에 3:3-4)


예상치 못한 많은 반전은 에스더서의 신학을 이해하는 데 핵심입니다. 에스더 2장 21-23절에서 모르드개는 왕의 신하 두 명의 암살 음모를 보고함으로써 왕을 구하게 됩니다. 왕을 대적하여 음모를 꾸민 신하들은 나무에 매달리지만, 모르드개의 선행은 완전히 잊혀집니다. 감옥에서 요셉의 잊혀진 선행과 신하 한 명이 나무에 매달린 이야기의 어휘와 사건 순서가 비슷한 것은 분명합니다(창 40:2, 6-8, 14-15, 23 참조). 


하지만 창세기에서 요셉의 잊혀진 선행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이어서 요셉이 바로 왕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과(창 41:40), 모든 사람이 요셉에게 절하라는 바로의 명령(창 41:43), 그리고 바로의 서명반지가 요셉의 손에 끼워지는 것(창 41:42)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르드개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고 충분히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반대로, 왕의 신하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것은 하만이고, 모든 백성은 그에게 절하라는 명령을 받으며(에 3:1-2), 왕의 반지는 유대인들의 원수의 손에 끼워집니다(에 3:10).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이 이야기의 뭔가가 완전히 잘못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만의 부당한 승진에 대한 이 끔찍스럽게 아이러니한 이야기 ​​속에서 요셉 이야기와의 유사점은 예상치 못하게 다시 바뀌고, 저자는 결국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저자는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동침하기를 거부한 이야기에서 한 구절(창 39:10)을 빌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기를 거부한 것(에 3:4)을 설명합니다. 더 많은 유사점이 뒤따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보고 유대인들을 멸하려고 음모를 꾸밉니다(에 3:5-6). 마찬가지로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이 그녀와 동침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보고 요셉을 멸하려고 음모를 꾸밉니다(창 39:13-18). 하만은 왕에게 유대인들을 비방합니다(에 3:8). 마찬가지로 보디발의 아내는 남편에게 요셉을 비방합니다(창 39:14-15). 왕은 하만의 거짓말을 믿고 유대인들을 대적하는 칙령에 서명합니다(에 3:11-15). 마찬가지로 보디발도 아내의 거짓말을 믿고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창 39:19-20). 하지만 결국 요셉은 승리하여 자신의 백성을 구했습니다(창 50:19-20 참조)! 어쩌면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의 일도 결국 잘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반전은 인생이 아무리 많은 난관을 겪더라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계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저자의 전반적인 전략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이 요점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셉의 이야기와 더 많은 유사점을 통해 아주 강력하게 강조됩니다. 이 책의 가장 아이러니한 반전에서 하만은 여왕과 간통을 시도했다는 누명을 당하게 됩니다(에 7:8). 이는 요셉에 대한 누명을 상기시켜줍니다(창 39:17). 하지만 하만이 훨씬 더 큰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에, 하만은 즉시 교수형에 처해지고(에 7:9) 그에게서 벚겨진  반지는 모르드개의 손에 끼워집니다(에 8:2). 모르드개는 실제로 또 다른 요셉이며, 세상은 다시 정상화됩니다.


구속 이야기의 줄거리에는 무서운 반전이 있지만, 에스더서는 우리에게 큰 희망을 제공합니다. 이 세상의 하만들은 그들이 원하는 만큼 위협하고 저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고 극작가가 대본을 완전히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에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백성에게 승리를 안겨줄 것입니다.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에 9: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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